교육은 아이들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하태규 (기독혁신학교 LboT 이사장)
속 뒤집어 놓는 아이들
자녀를 양육하거나,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흔히 발생하는 사건이 있다. 그것은 내 자식이 혹은 내 학생이 “말을 잘 안 듣는다”는 것이다. “말을 안듣는다”는 것은 부모와 교사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부당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자녀와 학생 잘 되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그 정도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속상하고, 부모나 교사도 속상하고 화가 나기 마련이다. 여기서 잠깐! 이런 상황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나 교사도 인내의 한계치가 있다.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도를 넘었다 생각되면 화가 치미는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흔한 갈등은 특별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속이 차 있기에 뒤집어 놓을 수 있다.
우리가 아이들을 대할 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이는 어리고, 아직 성장기에 있지만, 인격적으로 우리보다 부족한 존재는 아니란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인간의 인격이 완성되는 시기나, 인격의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기본 욕구를 요청하는 시기를 지나, 자기 주장을 할 시기가 되면, 이미 인격적으로 우리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 속을 뒤집어 놓는 속타는 이야기나 말 대꾸는 속이 없어서가 아니라, 속이 차있어서 그런 것이다. 아이들 속에 주변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만한 것을 품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 속을 뒤집는 그 아이들의 속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우리도 아이들의 속을 뒤집어 놓아야 한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우리 속을 뒤집어 놓았으니, 우리와 같은 인격체인 아이들 들의 속도 뒤집어 놓아야 한다. 그런데 이 때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머리도 좋고, 힘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기필코 다음 번에도 우리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의 속을 무엇으로 뒤집어 놓아야, 다음 번에는 우리 속을 뒤집어놓지 않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해야 한다. 성적을 올리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이다. 그것을 강조하면 우리 속만 뒤집어진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그들 속에 심어주어야 한다. 우리를 아름답게 보게 하려면, 아름다움을 속에 넣어야 하고, 우리를 밝게 보게 하려면, 밝음을 그 속에 넣어주어야 한다. 좋은 것을 속에 심어 속을 뒤집어야 한다.
교육은 속을 뒤집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교육은 아이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속(俗)된 속’을 버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다. ‘속(俗)’은 살면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지만, 부정적인 환경을 그냥 두고는 교육은 지속될 수 없다. 그래서 교사나 학부모는 이런 결심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속을 뒤집어 놓겠다. 그 속을 뒤집지 않고는 교육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아이들이 우리의 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 ‘속’은 때때로 우리의 적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속을 뒤집어 놓지 않으면, 계속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을 것이다. 교육은 아이들 속을 ‘확’ 뒤집는 것이다.